바로가기 메뉴



본문영역

CONTENTS
WE LUV DJs Vol.4 : Unkle
2007/09/21


Unkle | DJ

PL: 안녕하세요. 너무 나도 유명하신 우리들의 '삼촌'이라 불리우시는 DJ Unkle님을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한국 DJ의 절대적 존재이신 본인에 대해 짧게 소개를 부탁 드려도 될까요?

Unkle: 네. 지금 좋은 말씀을 하신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의 삼촌이라는 느낌이요. 아주 가깝지는 않지만 분명한 어떤 혈연관계가 있는 그런 느낌이 좋고요. 어떻게 보면 지금 하신 삼촌이란 얘기를 제가 많이 듣는데 팬 분들께서 Unkle이라고도 하시지만 삼촌! 하고 부르시는 분들도 있는데 물론 한국어와 영어의 차이점일 뿐이지 느낌에서는 차이를 못 느끼는 것 같아요. 간단한 소개는 80년대 Disco 시절부터 지금 현재까지 끊임없이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25년차 DJ입니다. 이 소개부터 시작하죠.

PL: 그러면 DJ Unkle이라고 이름을 지으신 이유도 거기에 있나요?

Unkle: 네, 바로 그것 때문이죠. 처음에 그 이름을 생각했을 때가 M.I. 시작했을 무렵인데 1995 ~ 1996년이죠. 그 당시에도 가끔 다니다가 보면 그 전에도 사람들이 'DJ'라고도 부르고 다녔지만 사람들이 쉽게 부를 수 있던 것이 'DJ 아저씨!' 이렇게 일반적으로 불렀었거든요. 그래서 DJ 아저씨... DJ 아저씨...이렇게 몇 번 읊조리다 보니까 아 그래, DJ 아저씨니까 UNCLE, 그런데 UNCLE라는 스펠링을 그대로 쓰려니까 뭔가 아저씨 같고... 그 당시에는 제가 아저씨가 아니었거든요. (웃음) 그래서 뭔가 하나 바꿔볼까 해서 UNCLE에서 그대로 발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C'를 'K'로 바꾸게 되었죠. 그래서 Unkle로 하기로 하고 혹시라도 누가 왜 'K'를 쓰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을 하기로 했어요. "그건 한국 'Korea'에서 따온 'K'에요." 이런 생각으로 그 이름을 만들게 되었죠.

PL: 아, M.I.시절에 만드신 이름이면 그 전에는 DJ 이름이 없으셨나요?

Unkle: 네, 그 시절에는 특별히 DJ 이름을 가지지 않았던 때라서... 말 그대로 그냥 DJ 아저씨였죠.

PL: 그랬군요. DJ Unkle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음악을 Play 하시는 지 저희 PartyLUV 독자들에게 간단히 소개해 주시겠어요?

Unkle: 네. 일반적으로 적어도 이러한 문화들을 접해봤고 일렉트로닉 음악을 아시는 분들이라면 그리고 한국에서 일렉트로닉 DJ들을 아시는 분들이라면 DJ Unkle하면 Trance를 잘 하는 DJ로 기억하실 분들이 많은데요, 그렇지 않아요. 제가 활동했던 시기에 Trance가 붐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사실 DJ라 하면 자신의 어떤 특정 장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좋기는 하겠지만 저는 조금은 더 포괄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에요. 저는 80년대 중반부터 음악을 시작해서 현재까지 많은 장르의 음악을 Play 해왔는데 그 당시에는 이태원에 120여 개의 클럽이 있었던 시절이에요. 전국적으로는 짐작하건대 약 천 개가 있었던 것 같네요. 그래서 그 당시부터 음악을 해와서 제 자신이 어떤 특정 장르의 음악을 한다 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나는 DJ다. DJ란 무엇이냐, 좋은 음악을 많이 듣고 많은 사람들에게 그 음악을 알려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라는 어떻게 보면 투철한 직업 정신을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음악만을 한다라는 생각은 가지고 싶지 않기도 해요. 사실 제가 4년 전 Seoul Lounge Compilation을 만들어 내기는 했지만 이것 역시 Club DJ로서의 음악들이 아니라 제 취향과 새로운 Trend를 제시하고 싶었던거죠.



PL: DJ Unkle님의 이 모든 음악 인생은 어디서부터 시작됐나요?

Unkle: 음... 일단 아주 옛날 얘기부터 한번 해 볼게요. 제가 꼬마 아이였을 때 우리 나라 사회는 조그마한 라디오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어떤 가치가 있었던 시대였는데 제 기억으로 국민학교, 지금으로 말하면 초등학교 때 우리 친 누님들께서 라디오를 듣기 시작하셨죠. 그런데 그 당시 60년대 말-70년대 초에 TV를 가지고 있으면 대단한 것이었고 사실 음악을 듣는 수단으로서는 라디오가 더 널리 쓰였지요. 저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누님들께서 라디오를 들으시기 때문에 저도 같이 들어야 했던 환경에서 자랐지요. 대부분 그렇듯이 음악을 하거나 그림을 그려도 어릴 때 자란 환경이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래서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랐어요. 돌아가신 우리 어머님께서 많이 하셨던 얘기인데 "넌 어릴 때부터 DJ에 대한 타고난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다." 라고 하셨어요. 직업적으로 DJ를 할 때 하신 얘기죠. 그게 무슨 얘기냐 하면 한글도 깨우치지 않았을 무렵에 전축이 하나 있었는데 예를 들어서 저희 아버지께서 글도 모르는 아이한테 어떤 곡을 틀거라 하시면 제가 그 음악을 가서 틀더라는 얘기죠. 그래서 제가 DJ라는 직업을 가졌을 때 너는 어릴 때부터 그런 소질이 있었다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러고 보면 제 생각에도 저는 어릴 때부터 선천적으로 그런 기질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렇게 음악을 알아가게 되면서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음악에 대한 감성이 조금 독특했었어요. 말 그대로 사춘기이기는 하지만 멜로디 하나에 눈물도 흘릴 수 있고 특정 리듬에 빠질 수도 있고 뭐 사춘기이기도 하지만 음악적인 감각이 남들과는 달랐던 것 같아요. 그 때 이후에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기타를 배우게 됐어요. 그 당시에는 통기타가 유행했었는데 무슨 자랑같이 들릴지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제가 음악적인 면에서는 다른 면보다 특출 났었던 것 같아요. 종로에 있던 기타학원을 다녔었는데 세달 코스의 것을 한 달 만에 선생님께서 더 가르치실 것이 없다고 하셨어요.

PL: 선생님께서 하산하라고 하셨군요!

Unkle: 하하. 그런 셈이죠. 그래서 그 기타를 가지고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그룹도 만들었었어요. 그러면서 군대를 갔는데 군대에서 그 당시에는 33개월 정도의 군복무를 했던 것 같은데 절반 정도는 최전방에서 많은 고생을 했었어요. 그런데 후반부는 군대에 오기 전에 대부분 자기 직업, 전직을 쓰잖아요. 저는 DJ라고 썼었죠. 왜냐하면 군대가기 전 6개월 정도를 미군 부대에 있었거든요. 서울 지역이 아니라 대전에 가면 장동리라고 신탄진 옆에 있어요. 그 곳에서 아는 사람을 통해서 클럽에서 8개월 정도 일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저의 전직은 DJ였죠. 그런데 군대에서 그 당시에 아침 저녁으로 음악도 들려주고 기상나팔도 레코드 판으로 틀고 했었는데 그런 임무를 맡게 된 거죠. 물론 제 전직을 참고로 해서 저에게 맡겨진 업무였겠지만 그 덕에 후반부는 말 그대로 음악 속에서 살았어요. 그래서 가까운 동네에 나가서 테이프로 녹음도 해와서 음악을 사병들에게 들려주기도 하고 나름대로 높은 직위에 계신 분들이 원하시는 음악 심부름도 하고 그렇게 음악과 관련된 일을 많이 하게 됐었죠. 그게 저의 군대 시절 이야기네요.

PL: 제대를 하신 후에 삶은 어땠나요?

Unkle: 제대를 하고 나서 회사를 한 번 들어갔었는데 제가 한 달을 못 채우고 나왔어요. 그래서제 생각에 아, 정말 적성에 맞지 않겠구나 해서 그 당시에는...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 저의 전부가 나오게 되는데 아무튼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대한민국 DJ의 역사라면 역사고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사회상의 어떠한 부분까지 그 모든 것을 얘기하고 있네요. 그렇게 회사에서 한 달을 못 버티고 나와서는 방황을 많이 했었죠. 그 당시로 말하자면 지금처럼 직업이 다양한 것도 아니고 회사를 다니는 것 외에는 별 것이 없던 시절이죠. 그래서 그 시절에 영등포에 가면 전국적으로 가장 유명했던 세 개의 음악 다방이 있었어요. 돌체, 상아탑, 대학. 이 세 다방들은 지역은 영등포이지만은 대한민국의 음악 다방을 리드하는 곳이었죠. 각각의 음악적 특색이 있었죠. 어떤 곳에서는 Progressive 한 Rock 위주로 들려주는 곳도 있었고 저는 돌체에 있었는데 그 곳에서는 Soul, Disco, Funky 등의 흑인 음악을 많이 다뤘었죠. 또 그 당시에는 Disco 클럽이 굉장히 많았었죠. 그런데 그 당시에는 심야 영업을 못했었어요. 12시가 돼서 싸이렌이 울리면 다 문을 닫아야 했었죠.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운영이 되었냐면 12시에 셔터 문이 닫히고 그 안에서는 영업이 되고 있었던 거죠. 그러다가 새벽 4시에 통금이 풀리면 다시 문을 열고 집에 갈 사람들은 가고 그런 식이었어요. 그게 그 당시의 Disco 문화였었죠.

PL: 통금이 있었던 시기의 음악 문화였다니 정말 새롭네요!

Unkle: 그러다가 통행 금지가 풀리게 된 거죠. 그 이후에 마치 해방을 맞듯 밤 문화가 성장을 하기 시작했었는데 그 당시가 제가 조금 전에 언급했던 이태원만 해도 120여 개의 클럽, 전국적으로 수 천 개의 클럽과 수 만 명의 DJ들이 있었죠.

PL: 수 만 명이라니 정말 믿어지지 않네요! 지금 DJ의 숫자와도 비교가 될 수 없을 듯 한데요?

Unkle: 지금도 전국적으로 지방 쪽의 락카페 형식이나 대형 나이트 등에서 활동하는 DJ들까지 합친다면 수백명 정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시 그 당시로 돌아가자면 옛날 이태원은 정말이지 지금의 홍대 지역보다 훨씬 더 했었죠. 킹 클럽, 문라잇 클럽은 독특했는데 그 당시 Hiphop을 주로 하는 클럽은 없었고 유행에 따라 갔었는데 유로 Disco나 Disco 쪽의 음악 말이죠. 그 곳은 흑인 음악인 Soul, Funk 음악을 많이 틀었었죠. 지금은 유명무실해 졌지만 이태원이 그랬던 시절이 있었죠.

PL: 그렇게나 활성화 됐었던 밤 문화와 음악을 즐기는 문화들이 어떻게 침체가 된 거죠?

Unkle: 제가 봤을 때에는 그런 문화들에 침체를 가져온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여가를 보내는 문화가 많이 달라진 것이 크다고 봐요. 그 당시에는 일반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는 일도 흔치 않았던 일이었고 여권을 만들기 조차 쉽지 않았고 컴퓨터도 지금처럼 보급되어 있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주말에 즐길 수 있는 곳은 클럽, 나이트 클럽이 되어 버린 거죠. 저도 일하면서도 그렇게 생활해 왔으니까요. 그러다가 이제 젊은 계층이 선호하는 문화가 컴퓨터의 발달과 함께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되면서 게임이라던가 겨울이면 스키장 여름이면 비행기타고 외국 여행을 간다던가 하는 것들. 모두 자동차를 갖게 됐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좋은 곳으로 나갈 수 있다는 여건들. 그런 것들이 문화에서 많은 변화가 왔다고 생각해요.



PL: 그럼 DJ Unkle님은 M.I.를 운영하시기 이 전에 어떤 방식으로 음악 생활을 하셨었나요?

Unkle: M.I.를 시작하기 이 전에 Citybeat Records라는 음반을 판매하는 곳이 있었어요. 그 전에는 제가 서교 호텔에 있던 멤버쉽 클럽 형식의 ZZQ라는 클럽에서 일을 하고 있었죠. 그 당시 그 클럽은 특이하게도 호텔에 있던 종업원들이 내려와서 써빙을 돕고 그 클럽의 내부 인테리어나 조명 등을 일본 사람들이 와서 디자인을 했었죠. 스피커 시스템도 일본 쪽에서 담당을 했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기준이 있었어요. 제가 살아오면서 많은 오디션도 봐오고 섭외도 들어오기도 했었고 제가 직접 찾아가서 일을 하겠다고 하기도 했었는데 저의 기준은 무엇이었냐 하면 그 클럽의 많은 구조 중에서 음향시스템을 항상 염두 해 두고 있었어요. 특정 클럽에서 음향이 좋으면 보수가 적어도 일을 하는 거고 보수는 많이 받아도 음향 시스템이 별로이면 저는 음악을 안 틀었어요. 그런데 제가 처음 ZZQ를 소개 받아서 왔는데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그 당시에 그 곳에서는 트윈폴리오의 통기타를 하셨던 윤형규씨께서 음악을 맡고 계셨죠. 그 분께서 음악을 담당하고 계셨었는데 그 곳 분위기는 놀자, 마시자 하는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죠. 마치 카페 같은 분위기에 그 당시에는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았었죠. 어떻게 보면 지금의 클럽형식과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음료 쿠폰을 받아서 콜라나 음료수나 술도 사먹을 수 있고 하는 형태였으니까요. Dance Floor가 있고 그 주위로는 정말 편안한 소파들이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마치 라운지 클럽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렇게 좋은 분위기에서 제가 11년을 일을 했어요.

PL: 11년이요? 정말 긴 시간이네요.

Unkle: 그렇죠. 그렇게 일을 하다가 인천에 있는 큰 클럽이 오픈을 한다해서 거기에 팀을 짜 DJ Booth를 맡아 Play를 해주기도 했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태원이나 강남 쪽에서는 일을 해 볼 기회가 없었어요. 서교 호텔에서 11년 동안 일을 하면서 다양하게 다녀 보지는 않았어요. 한 곳에 가서 그 곳이 좋으면 머물러 있고 쓸데없다고 생각되는 일들은 안 했던 편이었죠. 그렇게 일을 하다가 예전에 홍대에 현존하고 있는 20년이 다 된 레코드 샵에 단골로 갔었어요. 그 때에는 100% 레코드 판으로 틀었으니까. 그렇게 레코드 판을 샀었는데 옛날에는 레코드판이 다 비닐로 밀봉이 되어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들어볼 수가 없었던 거에요. 그래서 주인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죠. "이거 좋아요?" 그러면 "아, 네. 좋아요!"이렇게 말씀해 주셔서 사가지고 와서 들어보면 제가 원하는 음악이 아니었던 경우가 허다했었죠. 그래서 제 스스로 생각에 아, 음악을 파는 사람들이 왜 음악을 잘 모를까. 제가 그냥 좋아요? 라고 물어보는 경우보다는 이 음악은 어떤 음악이죠? 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러면 최소한 음악을 파는 입장에서 음악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설명을 듣고 사서 들어보면 전혀 다른 음악인 경우가 많았죠. 그래서 이런 현실은 참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고 왜 이래야 할까라는 생각에서 제가 Citybeat을 시작하게 된 거죠. 그 곳에서는 100%음악이 오픈되어 있었거든요. 손님들께서 오셔서 이 음악 좋아요? 하고 물어보면 한번 들어보세요. 라고 말하고 뜯어 드렸죠. 80년대 중반부터 DJ들은 100% LP음악을 틀었었는데 우리 나라에 싱글 레코드(LP에 들어있는 노래 가운데 한 곡을 추려내서 댄스곡으로 리믹스한 곡 들이 들어있는 음반)가 들어온 시기가 얼마 되지 않는데 그 싱글 레코드를 차지하기 위해서 경쟁이 벌어지는데 별의 별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죠. 광화문에 레코드 샵이 하나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렇게 음반을 파는 것이 불법이었어요. 너무나 많은 규제가 있던 시절인데 그 당시 광화문에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던 레코드 판이 있었죠. 그 싱글 레코드판을 차지하겠다고 잠을 안 자고 뛰어다니던 우리들의 과거가 있었죠. 그러다가 이 수요가 많다 보니까 대만 쪽에서 싱글레코드를 수입하는 곳이 하나 생겼는데 그 레코드를 파는 곳이 이태원에 화교 아주머니께서 계시던 곳이었죠. 그 당시에 몇몇 요소 요소에 일명 '머리급'들이 있었는데 예를 들어서 강남지역에는 김건모, 신승훈, 노이즈, 박미경 등을 키웠던 작곡자 김창완씨였죠. 그 반면에 저는 강북지역의 머리급이었고 또 이태원 지역에는 따로 있었고... 그래서 각 지역의 '머리급'들이 그 곳에 가면 새로 나온 음반들도 먼저 보여주고 했었는데 어느 시기에 보니까 좋은 음반들은 뒤로 빼서 돈을 더 내겠다는 사람들에게 주더라고요. 그래서 그 싱글 레코드 판에 붙어있던 Label속에 대만에 있는 레코드 회사 이름, 전화번호, 주소가 있길래 당장 편지를 보냈죠. 그 당시에는 이메일이 없었던 88년도 즈음이었으니까. 팩스인가 편지인가를 써서 제가 직접 레코드를 사고 싶다는 내용을 보냈죠. 저의 메시지를 받자마자 대만에 있던 레코드 수입 회사 사장이 바로 한국에 나왔어요. 지금도 잊지 않는데 시청 앞 프라자 호텔에서 만났었죠. 그래서 저보고 DJ냐고 묻더니 레코드를 팔 수는 있는데 수요를 조금 늘려서 사달라는 제안이어서 저는 그 당시 후배 DJ들도 많아서 상관없다고 하고 거래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은 짓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대만에서 전화로 음악을 들려주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냄새만 맡고 사야 되는 입장이었죠. A 음반이 나왔는데 몇 장을 살 거냐 하면 아, 이건 대체 몇 장을 사야 하나. 그랬었죠. 먹어보지도 않은 음식을 주문해야 하고 시향해보지도 않은 향수를 사야 했던 거죠. 하지만 누구보다도 먼저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서 무리수를 두고서라도 열심히 아주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사실 지금까지도 그 대만 회사와 연결이 되어 있어요. 그 회사에서도 저를 통해서 한국에 발판을 마련하는 좋은 기회가 됐기 때문에 서로 감사하는 Win-Win 전략이 맞아 떨어진 겁니다. 3년 전 문을 닫았던 그 Citybeat을 지금도 아쉬워하는 사람이 너무 많고 해서 올해 5월에 온라인 쇼핑몰을 개업했죠. 아직은 홍보가 미미해서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팔리던 안 팔리던 이름은 그대로 가지고 가자 라는 취지로 만들었죠.

PL: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네요!

Unkle: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엄청난 일을 했던 게 그 당시에 대한민국에서 그런 류의 음악을 냄새라도 맡아볼 수 있는 곳은 저희 가게밖에 없었거든요. 대부분 다른 가게들에서는 가요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팔았었는데 저희 가게는 그렇지 않았죠. 제가 직접 대만에 다니면서 그 대만 사람들에게서 물건을 가져오는데 아침에 대만에 있는 가게가 문을 열게 되면 아침부터 하루 종일 가게에 앉아서 음악을 골랐죠. 그렇다고 거기에서 들어볼 수 있던 것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도 다 통하면 길이 있다고 왜 앨범 자켓이나 Index 등을 보게 되면 이 음악은 대충 어떤 음악이겠다 하는 감이 오잖아요. 그 느낌으로 앨범을 구해왔었죠. 그렇게 가져오다 보니 당연히 한 두 곡은 들을만한 것들이 있게 되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그 음악을 기억해 놨다가 그런 류의 음악을 찾으시는 손님들에게 권하게 되고 그런 식으로 운영이 됐어요. 그 당시에 한국 가요 음악에 대한 Source, 방송에서 쓰이는 많은 배경 음악이나 효과음에 대한 Source, 패션 쇼에서 쓸 수 있는 음악에 대한 Source, CF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음악까지 많은 음악들에 대한 보물창고가 됐었죠. 그 당시 홍대에 어떤 색다른 음악의 시초가 됐었던 곳이 있었는데 발전소라고... 그런데 그 곳이 처음 오픈하고 나서는 장사가 잘 안됐었죠. 그러다가 저희 가게에 와서 색다른 음악을 틀고 싶은데 어떤 음악을 틀어야 하냐고 조언을 구해서 이런 저런 음악을 권했었는데 뭐 꼭 그래서일지는 모르겠지만 한마디로 대박이 났었죠. 그래서 계속 음악적인 서포트를 하게 되었네요. 저는 그 당시에도 일렉트로닉 음악을 좋아하고 그런 음악을 틀었었거든요. 그 때가 92년 93년 이니까 그 때 사실 일렉트로닉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던 때죠. 제가 생각나는 것은 Paul van Dyk이 동안의 애 띤 얼굴로 초창기 Trance 음악을 만들고 했던 것이 떠오르네요. 그 음악이 지금의 시초가 된 음악들이죠. 그리고 사실은 제가 군대에 있을 시절에도 독일 아티스트 크랩트 베르크 같은 경우에도 전자 Sound를 쓰긴 했었거든요. 그 당시에는 이런 전자 Sound가 어떤 팝송에 곁들여져서 순위에 오르고 내리고 했지만 이러한 모든 것들이 어떠한 일렉트로닉 음악의 시초가 됐다고 볼 수 있죠. 아무튼 그래서 그 대박이 났었던 발전소를 한 번 가봤었는데 스피커 우퍼가 찢어지는 소리가 나고 음악은 권했던 음악을 틀었기는 한데 테크노가 나오고 그 다음 곡이 힙합이면 또 거기에 맞춰서 놀고 그 다음 곡은 락이고 이런 식이었죠. 다시말해서 조금 앞서나가는 락카페라고 말할 수 있을가? 장르없고 Mix 없는... 아, 이 좋은 곡들을 이렇게 들려줘서는 안돼 라는 안타까운 마음에 만들게 된 것이 M.I.에요. 1995년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M.I.는 말하자면 테크노,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일렉트로닉 음악 클럽의 시초가 됐죠. 사실 M.I. 시절에는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유명 인사들이 많이 오기도 했었어요. 그 작은 가게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왔었죠. 그런 상태에서 제가 정말 개인적으로 미안했던 부분은 M.I.에 있던 화장실이 정말 열악했었던 부분이에요. 하하하!!! 특히 여자 화장실을 쓰려면 남자화장실을 거쳐서 남자들의 옷을 거의 스치고 지나가야 했거든요. 주말에는 게다가 화장실 밖으로 줄도 서있고 정말 미안했어요. 이런 화장실을 무릎 쓰고도 와서 즐겨주는 구나 라고 까지 생각했죠. 그래서 저의 소박한 꿈은 잘 갖춰진 화장실이 있는 클럽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 당시에. 제가 클럽 데이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게 된 것은 테크노에 대한 열정이에요. 제가 예전 마트마타 문 사장에게 우리 클럽들이 모두 모여서 함께 즐길 수 있는 날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죠. 일공팔에서 마트마타, M.I, Jokker red, 이렇게 네 개의 클럽이 모여서 창시된 것이 Club Day죠. 그렇게 1회는 네 개의 클럽이 시작됐었고 그 다음부터는 7-8개, 10개, 13개 이렇게 늘어나게 됐죠. 이러한 과정이 한국의 클럽씬에 대한 전부이고 홍대 문화의 시작이었고 현재까지를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홍대에 있는 모든 클럽들이 함께 가는 것도 좋은 취지이지만 클럽 각각의 목적이나 취지가 다르다면 그것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는 있어요.

PL: 듣기로는 현재의 Sound Day와 Club Day를 합친다는 얘기가 있는데...

Unkle: 그렇죠. 잠정적으로 결정된 사항이고요 예상컨대 올해 (2007년) 12월 쯤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양분화 시켰던 문화를 합쳐서 힘을 더 키워본다는 취지에서지요.

PL: 그러면 현재 M2로 돌아가서 M2를 시작하실 때에 아까 말씀하신 소박한 꿈(화장실 시설을 잘갖춘 클럽)에 중점을 두셨나요?

Unkle: 아, 네. 사실 큰 클럽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떤 시설 부분은 잘 갖춰 놓아야겠다 라는 부분은 정말 염두 해 두고 있었고요. M2를 처음 시작할 때에는 홍대에도 큰 클럽이 필요하다라는 생각이 시기와 정확히 맞아 떨어져서 성공하게 된 거고 그 당시에는 강남에도 강북에도 견줄만한 클럽이 없었기 때문이었기도 합니다.

PL: M2라는 클럽은 '언제 가도 재미있게 놀 수 있는 클럽'으로 정평이 나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Unkle: 네. 그 부분은 어떤 영업 부분에서의 전략이 잘 맞아 들어갔다고 볼 수 있어요. 저는 사실 클럽에서 어떠한 음악적 장르를 Play하던 간에 재미를 줄 수 있는 것은 좋다고 생각하지만 M2같은 경우는 음악적인 면 보다는 재미 위주로 운영되는 것이 사실인 것 같아요. 물론 클럽에서 음악적인 면이나 어느 정도의 퀄리티가 중요시되어야 한다는 것은 저의 주장이지만 M2는 5명의 공동 소유 경영자들의 합작이다 보니 클럽 경영에 있어서 합의점만을 우선적으로 찾은거죠.

PL: 그러면 M2는 음악적인 면과 상업적인 면이 나름대로 잘 절충되어 있다고 보시나요?

Unkle: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저의 주장만 펼 수 없다는 얘기는 제가 원하는 스타일의 음악으로 클럽 전체를 이끌어 갈 수 없다는 이야기였고요 그렇다고 해서 M2가 음악적인 면을 중요시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저는 개인적으로 M2라는 클럽이 잘 운영되는 것에서 제자리에서 한발자국 물러나서 지켜보는 입장이라 그 부분은 무난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서 저의 인생과 일, 그런 것들을 뒤돌아보게 되는데 스포츠에 비유하자면 감독이나 코치 자리에 올라가는 사람들은 밑바닥부터 선수생활도 모두 거쳐서 온 사람들이죠. 저의 인생도 비슷하게 견주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PL: M2는 해외 아티스트들을 많이 섭외해서 파티를 열었는데 그 Booking의 기준은 어떤가요?

Unkle: Tune의 유행 기준이 아니라 Style이 기준이 되죠.

PL: 요즘의 M2는 예전에 비해서 국내/외 게스트 DJ들을 선정하는 데에 있어서 많이 달라진 것 같다는 의견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Unkle: 아, 그 부분은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좋은 음악이라는 것에 대한 객관적인 잣대가 있을 수는 없죠. 예를 들어서 제가 생각하는 좋은 음악이나 클러버들이 개개인들이 생각하는 좋은 음악과 클럽의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 음악이 틀릴 수 있듯이 말이죠. 현재 저는 게스트 DJ들의 섭외 문제에 있어서 관여하지 않고있지만 음악적인 면에서 예전의 M2와 비교했을 때 조금 아쉬운 점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 과연 클럽을 위해서 Quality있는 DJ들을 많은 지출에도 불구하고 섭외해야 하는가 아니면 클럽 영업에 중점을 둔 선택을 해야 하는 가는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PL: 그러면 현재 Unkle님께서 M2의 운영에 관여하시는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요?

Unkle: 저는 현재 전체적인 기획물들을 관리, 진행해주고 개인적인 DJing도 하고 하지만 직접적으로 일하는 스텝들과 함께 움직이지는 않고요. 하지만 그 뒤에서 어떤 음악적인 문제점이나 DJ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중점을 두고 있고 영업에 있어서는 관여를 하지 않는 편이에요.

PL: 현재 M2의 레지던트 DJ분들과는 교류가 활발하신가요?

Unkle: 그렇죠. 하지만 어려운 부분도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왜냐하면 저는 오랫동안 DJ로써 음악을 해 왔던 사람이고 또 후배들은 나름대로의 입지를 굳혀가는 중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미묘한 갈등도 있거든요.

PL: 요새는 Play Time이 있으신가요?

Unkle: 요새는 특별한 케이스가 없으면 안하고 있어요. 사실 저는 DJ로써 클럽에 오시는 분들을 위해서 음악을 틀어드리는 일은 어떻게 보면 정말 많이 했다고 생각을 해요. 요즘도 제가 스스로 음악을 틀어보기 위해서 많은 음악을 체크하고 있습니다. 항상 음악을 들여다 보는 게 일이고요. 그리고 모든 시스템이 있으니까 제 나름대로 mix도 한번 해보고 CD로 구워서 들어보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만족하고... 어떻게 보면 혼자 노는 거죠(하하). 그것도 상당히 즐거운 일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그러다가 또 후배들이나 어떤 파티 Scene에서 저를 필요로 하면 가서 들려줄 수도 있고 다만 내가 부담을 갖는 내 클럽에서는 조금 자제를 하자고 하는 입장이에요. 그런 점에 있어서는 요번에 일본에서 Play했을 때 정말 자유로웠어요. 물론 저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제가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곳에서 Play를 갖게 되니 정말 좋았죠. 사실 한국에서는 제가 점잖게 음악을 트는 편인데도 거기에서는 보여줄 것 다 보여주고 내가 놀 만큼 놀고 하는 장면들도 나오더라고요.

PL: 일본측에서 그 파티를 개최할 때 한국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DJ를 찾았다고 하는데 어떻게 연결되셨나요?

Unkle: 사실 일본측에서 한국에 DJ를 찾으러 왔을 때에는 이미 한국의 실정을 다 파악하고 왔던 상태였어요. M2도 두 번 왔다 갔었고 다른 클럽들도 다녀가고 시장조사를 다 했었던 것 같아요. 일본사람들은 장인정신에 대해 높게 평가를 하는데 저도 저보다 지위도 높으시면서 나이가 더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90도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었는데... 그렇게 한국에서 누가 이러한 문화를 탄생시켰고 이끌어 갔으며 한국을 대표할 만한 인물이 있을 것이다라는 전제 하에 저를 찾게 되었다고 설명을 들었습니다.

PL: 그렇게 된 거군요! 그래서 열린 첫 번째 파티는 오사카에서 있었죠?

Unkle: 네. 오사카 Saza-E라는 클럽에서 있었죠. 가보니까 M2보다 약간 작은데 상당히 예쁘고 4층을 통째로 쓰는데 4층은 독립 공간이고 3층까지의 공간으로 클럽을 이루고 있었어요. 6월 30일에 파티가 있었죠. 그 전날에 Disco파티가 있었는데 리허설 겸 사전 답사 겸 해서 갔었어요. 그런데 굉장히 재미있었죠. 우리 나라 사람들은 클럽에 오면 쓸데없이 광분해서 즐긴다면 일본사람들은 정말 행복하게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걱정이 들더라고요. 제가 준비한 음악은 멋스럽다면 멋스럽고 어렵다면 어려운 음악인데 조금 걱정이 들었죠. 그래서 그 다음 날 파티에는 저희 레지던트 DJ중 한명인 한민이가 앞에서 Warming Up을 House음악으로 해주었고 분위기가 괜찮았어요. 그러고 나서 제가 1시간 반 DJing을 맡아서 했는데 일본은 외국 게스트에게 기본적으로 1시간 반 이상은 안 주더라고요. 그런데 마침 저와 같이 하기로 했던 이탈리아 쪽 아티스트가 취소되어서 그 친구 시간까지 한민이와 둘이 나누어서 했죠. 초반에 30분 정도는 조용히 나가다가 그 때부터 무언가 느낌을 주기 시작했는데 음악으로 Saza-E 클럽을 한국의 M2 분위기처럼 바꾸어 버렸습니다.

PL: Unkle님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나니 정말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느껴집니다.

Unkle: 저도 사실 이런 인터뷰의 기회들을 통해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데 정말 커튼으로 가려지지 않은 저의 순수한 모습이에요. Citybeat도 사실 부적합하고 불합리한 한국 레코드샵때분에 만들게 되었고, 좋은 음악을 틀어줄 환경이 없었다고 생각해서 M.I.가 탄생하고 음악을 틀어줄 제대로의 시설이 갖추어진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드니 M2가 만들어지고 그렇게 된 거죠. 무언가 불만이 있었던 부분에서 자꾸 메워 놓고 채워놓다 보니 이렇게까지 오게 된 것 같네요.

PL: 일본 클럽에서 느껴지는 색다른 점이 있었다면요?

Unkle: 아, 일본 클럽에서는 Dance Floor에서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는 사람이 없었어요. 규정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 같고 한국에서는 술병과 담배 불 때문에 나는 사고들도 더러 있는데 일본은 그런 사람들이 없었죠. 저도 Floor에서 담배를 피우려고 했는데 같이 갔던 가이드 분께서 여기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사실 저는 특별 게스트라고 클럽 측에서 배려를 해주셨는데도 아무도 안 피우니까 멋쩍어서 담배를 그냥 껐죠. 저도 나중에 그런 부분은 한국에서 조금 적용을 해보고 싶다고 느꼈어요. 더불어 클럽을 들어가는 사람들이 순수한 마음에서 음악을 즐기려는 모습이 보이고 특히 우리나라와 비교되는 모습은 술이 많이 취해있는 사람들은 정말 보이지 않더라고요. 특히 질서를 너무 잘 지키고 하지 말아야 할 규정은 다들 조용히 지키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죠. 클럽에 놀러 왔으면 정말 다른 부분들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즐기는 것에 집중하고 있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개인주의에서 나타나는 부분일 수도 있겠는데 그런 모습들이 눈에 띠었어요.

PL: 그러면 앞으로 일본 쪽과 계속 교류하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Unkle: 제가 다녀왔던 오사카나 동경의 아게아나 움 쪽에서도 총 책임자 분들과도 한 얘기가 우선 제가 마음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를 하라고 하셨는데 사실은 요즘 제 머리가 굉장히 복잡해서 제 머릿속에 음표가 없어요. (하하) 나중에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또 계획을 세우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사실 동경의 아게아는 바닷가에 있는 공연장이고 너무 멋지고 예쁜 대형 장소이어서 꼭 침공(?)을 해보고 싶은 장소이기도 해요. 일본에서 돌아오면서 그런 생각들을 했었죠. 그래서 '일본침공'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한국 DJ들과 함께 가서 한 번 침공 파티를 하고 싶어요.



PL: DJ Unkle님께서 앞으로 하시고 싶으신 일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Unkle: 사실 저는 클럽 일에는 많이 지쳐있어요. 복합적인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인데 많이 힘든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클럽에 대한 매력이 떨어져 있는 건 사실인데 이제는 무언가 또 음악과 관련되긴 하지만 복합적인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카페도 빠도 클럽도 아니지만 그런 모든 공간의 냄새를 풍길 수 있는 편안한 곳이죠. 그 대신에 음악만큼은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수준으로 틀 수 있는 공간이요. 저는 이런 표현을 좋아하는데 '음악이 나를 감싸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그런 Sound가 있는 공간은 혼자 있어도 즐겁고 둘이 대화를 해도 즐겁죠. 그 곳에서 커피도 마실 수 있고 음식도 먹고 술도 마실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해 낼 거에요.

PL: 어떻게 보면 지금의 클럽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형태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Unkle: 한 단계 위라면 위인 것 같고 저는 그런 공간이 앞으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의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L: 그럼 마지막으로 저희 PartyLUV에 일렉트로닉 음악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Unkle: 네. 제가 모든 음악 중에 특히 좋아하는 음악이 일렉트로닉이라서 같이 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자면 일렉트로닉 음악을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받아들여줬으면 좋겠어요. 어떠한 특정 음악의 장르, 뜻을 꼭 알고 듣는다기 보다 일렉트로닉이라는 장르도 사실은 대한민국에서만큼은 쉬운 음악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한국 사람의 감성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특히 멜로디에 굉장히 약하죠. 그래서 애절한 피아노 음악 하나 가지고도 대박이 터질 수 있는 나라죠. 바로 감성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인데 그런 점에서 보면 일렉트로닉이라는 음악이 그런 감성과 안 맞는 부분이 있어요. 예전에 테크노 붐이라고 우리나라에 불어왔던 것도 순수하게 일렉트로닉 음악 자체로 붐을 일으켰다기 보다는 대중문화에서 예를 들어 테크노 전사라던가 이런 분위기에 휩싸여서 같이 올라가게 된 거라고 볼 수 있죠. 사실 힙합도 마찬가지에요. 한국의 대중음악이 R&B나 힙합 쪽으로 가수들이 활동하지 않았다면 지금만큼 힙합이 강해지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따라서 대중문화가 어느 정도 리드를 해 주어야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나타나는데 그런 점에서 볼 때에 한국에서 일렉트로닉 음악을 사랑하시는 분들은 정말 대단하시다고 생각해요. 이 음악 자체는 한국 사람으로서 쉽게 좋아하거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악은 절대 아니니까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렉트로닉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일단 고마움을 먼저 전하고 싶네요. 그리고 이 음악을 계속 좋아하려면 이러한 음악에 대해서 너무 집착하거나 밀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받아들이고 좋아하고 흘려내야 다음 음악도 올 수 있거든요. 특히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 중에는 음악에 대한 주관성이나 공부를 많이 하시는 분들이 계시죠. 예를 들어 특정 음악에 대해서 계보를 줄줄 읊는 다거나 이것 저것 따져서 분석하는 부분이 있어요. 물론 매니아 입장이나 칼럼니스트들은 공부를 할 필요성도 있죠. 하지만 그렇게 공부를 하시는 분들의 이 정도도 모르면 일렉트로닉에 대해서 언급도 하지 말라는 태도는 좋지 않다고 봐요. 어떤 특정 대상에 대해서 열중하는 태도는 정말 아름답죠. 마음을 열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네요. 많은 음악을 들었을 때 감성은 더 풍부해지고 배는 더 부르게 되어 있으니까요!

PL: 일렉트로닉에서도 많은 장르를 여과용지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겠네요.

Unkle: 네, 그렇다고 볼 수 있어요. 제가 인터뷰를 하면 꼭 나오는 질문이 있는데 오늘은 안 나왔지만요. 가장 좋아하는 트렉에 대해서 얘기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답변은 항상 같아요. 없다는 거죠. 없다는 것에 대한 의미는 무엇이냐 하면 오늘까지 A라는 트렉이 너무 좋았는데 당장 내일 듣는 B라는 트렉이 너무 좋아 버리면 저는 어떡합니까? 그런 입장에서 없다고 말하는 것이고 사실 저는 내일 들게 될 B라는 트렉에 대한 기대가 더 크기 때문에 오늘 섣불리 어떤 트렉이 가장 좋다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제가 한 달 전에 Mix한 CD를 오늘 들어봤는데 아, 내가 이것밖에 안되나 싶을 때도 사실 있어요. 한 달 전에는 정말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늘은 아닌 게 되어버린 거죠. 3년 전 것도 듣고 있으면 제가 이런 실망스러운 mix를 정말 했었나 싶을 때도 있고 그냥 그런 것도 참 재미있어요.

PL: 아, 그러시군요. 오늘 긴 시간 동안의 인터뷰였지만 20년이 넘는 세월을 얘기하기에는 짧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 인터뷰 정말 감사드립니다!



WE LUV DJs Vol.5 : Dguru

WE LUV DJs Vol.5 : Dguru

26 October, 2007

구체적으로는 신나고 슬픈 전자음악을 하고 있어요. 저는 사실 전자음악의 장르를 예전에도 잘 모르겠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 요즘 들어서는 더욱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점점 경

WE LUV DJs Vol.4 : Unkle

WE LUV DJs Vol.4 : Unkle

21 September, 2007

사실 DJ라 하면 자신의 어떤 특정 장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좋기는 하겠지만 저는 조금은 더 포괄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에요. 저는 80년대 중반부터 음악을 시작해서 현재까지 끊임

신 개념 하이브리드 밴드, Apls!

신 개념 하이브리드 밴드, Apls!

13 September, 2007

저희는 음악적으로 새롭고 싶습니다. 항상 New Comer이고 싶은 게 저의 소망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새로운 것은 말 그대로 제가 새롭게 하는 것인데요, 저는 처음에

No.1 하드 트랜스 아티스트 듀오, Alphazone!

No.1 하드 트랜스 아티스트 듀오, Alphazone!

08 August, 2007

저희의 음악을 High Energy 로 이름 짓게 된 이유는 예를 들어 Psy-Trance 는 반복되는 비트에 거의 동일하게 반복되는 비트를 사용하죠. 뭔가 Building Up 하는

WE LUV DJs Vol.3 : Beejay

WE LUV DJs Vol.3 : Beejay

03 August, 2007

처음에 명월관에서는 Mixing 연습하는 단계여서 여러 가지 음악을 틀었었죠. 하우스에 바탕을 둔 음악이었긴 한데 그 당시에는 DJ 전문 장비가 들어오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Mix

WE LUV DJs Vol.2 : Oriental Funk Stew

WE LUV DJs Vol.2 : Oriental Funk Stew

26 June, 2007

한국에 와서 상수도에서 DJing 을 했어요. 그 때 당시에는 정말 한국에 DJ 나 하우스 문화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아무 것도 없는 그 시절에 DJ 할 수 있는 사람이

M-flo 전 멤버, Artimage 소속의 디바 LISA

M-flo 전 멤버, Artimage 소속의 디바 LISA

06 June, 2007

한국에는 M-flo의 예전 멤버로 잘 알려진 Artimage 소속의 보컬 Lisa 를 가야금홀에서 공연이 있는 날 오후에 잠시 만나보았다. 한국과의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고

No.1 일렉트로닉 밴드 Infected Mushroom

No.1 일렉트로닉 밴드 Infected Mushroom

23 May, 2007

우리는 Psychedelic Trance 만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모든 음악의 장르를 접하고 공부하죠. 그런 작업을 통해 받은 느낌을 조합해 다양한 사운드를 만들고 있습니다

일본의 대표 락 밴드 Yamaarashi

일본의 대표 락 밴드 Yamaarashi

19 April, 2007

10년을 넘어 장수하는 인기 락 밴드로서 현재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같은 음악적 성향의 후배 밴드 Orange Range 가 가장 존경하는 밴드로도 유명하며 페스티발 급의

WE LUV DJs Vol.1 : Baram

WE LUV DJs Vol.1 : Baram

12 April, 2007

제가 96, 97년도에 거의 매일 드나들다시피 한 장소가 있는데 거기에 가면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사회적 관념이나 제약에 얽매이지 않고 그야말로 자유롭게 자기를 표현 할 수 있

FIRST«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LAST

푸터 영역

Copyright © JCYCOMPANY. All rights reserved.